피해자가 마시던 커피에 몰래 자신의 체액을 넣어 마시게 한 행위도 강제추행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신체 접촉이 없었다는 이유로 강제추행을 무죄로 본 원심 판결을 뒤집은 것으로, 강제추행죄의 성립 범위를 둘러싼 법조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7월 9일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상고심(2026도2156)에서 강제추행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돌려보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마시고 있던 커피잔에 몰래 자신의 정액을 넣었고, 피해자는 이를 알지 못한 채 커피를 마신 것으로 조사됐다.
원심은 피해자의 음료를 마실 수 없게 만든 점을 들어 재물손괴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강제추행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강제추행이 성립하려면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하는데, 컵에 체액을 넣은 행위를 피해자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쟁점은 강제추행죄에서 말하는 '폭행'의 범위였다. 판례는 그동안 강제추행을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눠왔다. 상대방을 폭행·협박한 뒤 추행하는 경우와, 폭행 행위 자체가 곧 추행 행위가 되는 이른바 '기습추행'이다. 기습추행의 경우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힘이 필요하지 않고,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만 있으면 그 힘의 강약은 따지지 않는다.
대법원은 이 사건 행위의 외형이 아닌 실질에 주목했다. 피고인이 컵에 체액을 넣은 목적은 컵을 더럽히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이를 마시게 하려는 데 있었으므로, 단순한 물건 훼손이 아니라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체액을 피해자의 몸속에 들어가게 하는 행위가 정신적 고통뿐 아니라 육체적 고통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이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신체에 가해진 불법한 유형력의 행사로서 강제추행죄의 '폭행'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강제추행죄를 '신체를 직접 만지는 행위'로 좁게 이해해 온 기존 인식에 변화를 줄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체에 직접 손을 대지 않았다는 형식논리에만 머물렀다면 피해자가 입은 실질적인 침해가 법의 허점으로 빠져나갔을 것이고, 체액을 탄 음료를 마시게 한 행위를 재물손괴로만 평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행위의 외형이 아닌 실질을 보고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로 판단한 것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덧붙였다.